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 개봉 메인 예고편

2017. 5. 24. 14:01일상생각

노무현 전대통령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는 25일 개봉이된다

출생 1946년 9월1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하여 2009년 5월 23일 안타깝게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배우자 권양숙여사와
아들 노건평 노건호 딸 노정연이 있으며
2008년에는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2002년 제 16대 대통령선거에 당선이 되었으며 2003년부터 2008년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노무현 학창시절

1953년 경남 진영 대창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때 전교회장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 졸업후 진영중학교에 진학을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외상입학을 했다

외상입학이란
나중에 돈을 내고 학교를 다닌다라는 말이다 공납금낼 돈조차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던것이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후 지금의 9급공무원시험을 준비했는데 형의 권유로  상고에 입학을 하였다 어려운 형편은 계속되었고 방황을 많이하여 졸업을 21살 즈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고한다

대학교 진학은 하지못하고 학력은 고졸로 남게된다

노무현 청년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도 다녀보고 울산에서 막노동도도 해보고 농협입사 시험을 쳣지만 떨어진다
군에입대하여 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여 그이후로는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1973년쯤 결혼을 하였으며
직업이 없는 고시생 노무현과 권양숙이 결혼을 하였으며 아이도 낳게된다

1973년 사법시험을 보기 시작하여 1975년 30세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변호사로 알고 있던 필자였는데 1977년 판사로 임용이 되었던때가있었다 (대전지방법법원판사)
8개월간의 판사생활을 거쳐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게된다
왜판사를 그만뒀을까..

노무현 변호사시절

조세전문변호사로 부산일대에서는 아주잘나가는 변호사로 알려졌으며 1981년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으로 변론을 맡게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한다

부림사건은 제5공화국 집권초기 통치 기반을 목적으로 일으켰던 사건으로 학생과 교사 회사원등 22명을 영장없이 체포해 불법으로 감금하고 구타 물고문 통닭구이라는 엄청난 살인적인 고문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맡으며 피해자와 면담하던중 고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미친듯이 부림사건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후 노동자 및 어려운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소를 개설하였고 이후로 각종 민주주의 운동에 적극참여하게된다

민주주의 운동으로 당시 검찰은 그를 구속하였으며
안기부에서 압력을 넣어 변호사 면허 정지를 시키고 직업을 갖지못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감시하였지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며 검찰은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못하게된다

노무현 국회의원시절
국회의원시절 비리조사 틀별위원회에 선정이되었고 각종 청문회를 거치면서 일명 청문회스타가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문회때 명패를 내던진 유명한 노무현명패사건 이청문회에서 국민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통쾌한 추궁으로 유명세를 얻으며 이름을 알리게된다

당시유명했던 말
이게 회의입니까? 이것이 어찌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으면 반대토론해야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

당시 5공 비리 청문회와더불어 3당합당을 야합이라 거부하고 정치인생을 열어준 김영삼을 떠난다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꼬마민주당으로 입당하면서 부총재를 지냈고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소속으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낙선을 하게된다

1988년 7월 보궐선거에 다시출마하여 당선이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이회창과 맞붙게되어 이회창이 당선이 유력한 예상을 넘어 이회창과  2%대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얻게되어 제 16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2003년에서 2008년 대통령직을 수행후 퇴임하였으다

노무현 검찰수사

무슨 이유로 검찰에 출두하게된걸까
재임시절 친인척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정도로 비리를 경계했는데 2009년 박연차게이트로 수사를 받게된다

박연차게이트
박연차라는 인물이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린사건

이사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연루가되면서 노무현 대통령까지 검찰에 수사를받게된다

수사과정에서 박연차가 노무현에게 건낸 사실을포착 15억원에 대해 수사를 벌였고 노무현은 차용증을 제시하여 사저신축비 용도로 박연차에게 개인간의 거래로빌린 금전거래다하여 무혐에로 종결외었다

이후 박연차가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여사에게 건낸 100만달러(약13억)가 수사선상에 포착이되어 수사를 받게된다

권양숙여사는 돈받은것을 시인하였다
노무현은 박연차와 권양숙간의 거래를 본인은 알지못했다고 주장하였다

검찰은 포괄적인 뇌물수수혐의의 공법으로 보고 형사처벌을 하려하였다
검찰은 권양숙여사가 받은 뇌물에대해 본인도 인지했을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수사과정에서 입증할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일가에대해 몇개월간의 수사를 거치며 장기화가 진행되었다

수개월후 검찰 수사진이 다시 꾸려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검토하게된다

노무현 주변 인물 및 가족들이 차례로 소환시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괴롭힌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이자 친구인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이 뇌졸중으르 앓고 있었으나 구속되었고 병보석마저 불허하게 되었으며 이후 병보석이 허락되었으나 치료시기가 지나 사망을 하게된다

노무현은 그에대해 더이상 사람들을 괴롭히지말아달라며 모든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향한다

2009년 5월23일 자택의 컴퓨터에 유서를 미리 작성해두고 봉회산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만다

자살로 인하여 뇌물 받은거맞네 같은 말들이 따라다녔고 차츰 잊혀저간다

그의 결백은 ...
안타까운 그의 인생 아무쪼록 높은 세상에서 잘 있기를 바랍니다

이글은 영화와는 관련이 없는글이며
노무현에 대해알고자 쓴 글입니다

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다큐멘터리  로 제작하여 줄거리를 보면 선거때 해당영상과 실제 노무현의 영상들로 만들어진것같습니다

노무현입니다 예고편 동영상

만년꼴찌 후보였던 노무현의 대역전드라마